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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만 원합니다 결말 포함 리뷰 (후회남, 회귀물)

by 반짝이 다아트 2026. 3. 17.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평소 이런 류의 작품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당신의 아이만 원합니다'는 초반 설정부터 도저히 납득이 안 되면서도 계속 손이 갔습니다. 11번이나 회귀해서 결국 그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그 과정에서 지옥 같았던 남편을 다시 만나야 하는 상황이 과연 현실적인가 싶었죠.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아이가 없어서 11번의 생을 모두 공허하게 보냈다는 설정 자체가 처음엔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차까지 완독한 지금,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왜 완결까지 완주하고 다시 1화를 보는지 이해를 했습니다.

 

회귀 설정과 율리아나의 선택


회귀물(regression narrative)은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 율리아나는 죽음이후 반복적으로 시간이 되돌아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리아나는 그냥 시간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 것에 불과하지만 칼리언의 '회귀'는 단순히 시간을 되감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생 전체를 재설계하는 극단적 선택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율리아나의 일관성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11번의 회귀 동안 학습했을 법한데, 여전히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걸 전혀 보지 못하는 캐릭터 설계가 그랬습니다. 남편 칼리언이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데도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새로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죠. 전생의 로이드를 다시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나 때문에 불행했으니까"라는 일방적인 죄책감으로 상대의 진심을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니 이런 캐릭터 설계가 의도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리아나는 독자로 하여금 지금 내가 가진 것들, 현재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집착과 사랑의 경계, 과거에 매몰된 채 현재를 놓치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죠.

실제로 68회가 지나서야 첫 동침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전개 속도에 저 또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원해서 결혼을 한거라면 동침의 기회는 꼭 잡아야할텐데. 율리아나는 그렇지 않죠. 떨고움찍하고. 그래서 댓글 반응도 답답해했습니다. 하지만 동침 이후 그려진 또 납득하기 힘든 둘 사이의 뜨거움도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아요. 물론 그 모든 설정은 완주를 하고나면 더 재밌는 요소가 됩니다.

 

칼리언의 후회


칼리언은 전형적인 후회남(remorseful male lead)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후회남이란 초반에 여주인공을 냉대하거나 오해했다가, 뒤늦게 진심을 깨닫고 구걸하듯 사랑을 구하는 남성 주인공 유형을 말합니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원형이죠.

솔직히 칼리언의 초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율리아나의 집안이 자기 어머니를 죽였다는 이유로 원수 가문의 딸이라며 무조건 배척하는데, 그 여자 본인이 어머니를 죽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원수 집안에서 시집을 온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은 왜 못 하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로이드를 두고 '정부'냐고 자꾸 물어보면서도 정작 율리아나의 대답은 안 듣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또 답답해하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패턴이 정말 발암 요소였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당신이 바라는 걸 해줄 테니"라는 대사였습니다. 험악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씹어뱉는 이 장면에서, 증오와 욕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서로를 너무 증오하면서도 몸이 기억하는 끌림, 그 모순된 관계성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죠.

이때 댓글도 제발 주인공이 칼리언이 아니어야한다고 호소를 하는데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칼리언이 왜 남주인지 납득하게 됩니다. 그의 회귀, 율리아나의 회귀, 로이드의 회귀가 맞물리면서 복잡한 인과관계가 드러나는데요. 칼리언은 몇십 번의 삶을 통해 비극을 혼자서 막으려 애쓰며 끝없이 구르고 또 구릅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연민을 느꼈습니다. 처음의 실수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반복되는 회귀 속에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죄책감과 후회가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거든요.

 

로이드의 집착과 사랑의 경계


로이드는 이 작품의 숨겨진 빌런인가? 싶은 캐리터입니다. 물론 초반에 냉담하고 싸가지 없는 칼리언에 비해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로이드가 진짜 남주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친절을 강요하고, 자기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으며 이기심을 채우는 전형적인 집착형 캐릭터로 보여요. 집착(obsession)은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욕구를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건강한 사랑(healthy love)과 달리 상대방을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확히 구분됩니다.

제가 로이드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건 그가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 믿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 "너만 행복하면 돼"라는 명목의 감금. 이런 행동들이 사랑의 탈을 쓴 폭력임을 작품 후반부에서야 로이드 본인도 깨닫지만, 그 깨달음이 오기까지 율리아나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집착형 애착(obsessive attachment)을 보이는 사람은 상대방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극도로 높으며, 이를 통제로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로이드가 정확히 이런 케이스죠. 한 번 율리아나를 잃어봤고 그 과정에서 칼리언을 만난 기억이 그를 지배했던 것 같아요. 그는 결국 자신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는 걸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모든 게 늦은 후입니다.

로이드와 칼리언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칼리언은 잘못을 깨닫고 변화를 시도하는 반면, 로이드는 끝까지 자기 방식을 고집하다가 파국을 맞이합니다. 이 대조가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줍니다.

 

결말의 의미와 아쉬운 점


작품의 결말은 칼리언, 율리아나, 로이드 세 사람의 회귀가 모두 맞물려 진짜 빌런인 황제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좀 맥이 빠졌습니다. 그토록 복잡하게 쌓아올린 갈등과 긴장감이 황제라는 외부 악당을 제거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게 너무 단순하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능력(ability)이 아니라 인간성(humanity)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을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 "그들은 모두 행복했습니다"라는 결론이 소설이기에 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한 독자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아이만 원합니다 네이버 웹소설 표지 이미지

 

제가 이 작품을 완독한 건 비교적 짧은 분량 덕분이기도 합니다. 만약 더 길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초반에 이해 안 되던 주인공들의 행동이, 결과를 다 알고 나니 연민의 시선으로 보이더군요. 이게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등장인물 전부가 정상 범위는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초반 설정이 있지만, 그 비정상성이 오히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리얼하게 그려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끝까지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자극적인 전개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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