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스캔들은'회귀물(타임슬립 장르)'이라는 소재는 웹소설에서 너무 흔하니까 논외로 할게요. 과거로 돌아가서 복수한다는 설정, 이미 수십 편은 읽어본 패턴이니까요. 수하나 작가의 '로열 스캔들'은 어떤 점이 다른지에 대해 짚어보면서 리뷰할게요.

저는 2025년 완결 후 정주행으로 읽었는데, 164화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2024년 4월 30일 카카오페이지에 첫 연재를 시작했고, 2025년 완결되었습니다. 5월 3일 기준 50.5만 뷰를 기록했을 정도로 초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엄마의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회귀 후 복수의 트리거가 '내 죽음'이 아닌 '아이의 죽음'
일반적인 회귀물(회귀 서사)은 주인공이 억울하게 죽은 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회귀 서사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사는 이야기 유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로열 스캔들'의 주인공 윤수련은 자신의 죽음보다 딸의 죽음에 더 큰 분노와 슬픔을 느낍니다. 저도 처음엔 이 차이가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읽으면서 점점 '그래, 이게 진짜 엄마의 심정이지' 싶었습니다.
윤수련은 대한제국의 황후입니다. 딸의 장례식 날, 보모상궁이 남편인 황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것도 모자라 그 두 사람이 제 딸을 의도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진실까지 밝혀집니다. 시어머니인 황태후마저 이 모든 일을 묵인하고 심지어 주도했다는 배신감. 결국 수련도 딸이 죽은 곳에서 죽게 되고, 5년 전 과거로 회귀합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수련의 복수 목표가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나를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가 아니라 '내 아이를 반드시 살리고, 그들에게 복수하겠다'입니다. 이 두 목표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스토리에 긴장감과 절박함을 더합니다. 저는 중간중간 수련이 좀 답답한 선택을 하는 것 같아 속이 탔는데, 나중에 보니 그 선택들이 이유 있는 포석이었더라고요. 작가가 캐릭터의 동기(motivation)를 확실히 잡아놨기 때문에 독자가 주인공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를 잃고 복수하는 이야기는 많죠. 그 시작점 어딘가에 있는 드라마 '청춘의 덫'이 생각나시나요? "당신 부셔버릴거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드라마죠. 웹소설 속 수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수련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단순히 억울한 피해로만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수련 스스로가 자신이 너무 순응하며 살았다는 걸, 자기 인생에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 자각이 회귀 후의 그를 다르게 만들죠. 가련하거나 나약하지 않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강하지도 않아요. 중간중간 좀 답답한 선택을 하는 것 같아 속이 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해?' 싶은 장면들이요. 그런데 전체 스토리를 다 읽고 돌아보면 그 선택 하나하나가 다 딸을 살리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게 납득이 됩니다. 답답함이 아니라 안타까움으로 남는 이유가 그거예요. 수련이 틀린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수련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크다는 걸 독자도 같이 느끼게 되는 거거든요.
수하나 작가는 이전에 '몸을 공유하는 사이'(신영미디어 발행, 카카오페이지)를 쓴 경력이 있는 작가입니다. 두 작품 모두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전 포인트는 '이헌'이라는 남주의 존재
로맨스 판타지(로판)에서 남주는 정말 중요합니다. 아무리 여자주인공이 멋있어도 남주가 매력 없으면 작품이 반쪽짜리가 되거든요. '로열 스캔들'의 남주 이헌은 원래 황태자 계승 1순위였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황제 자리를 포기하고 물러났죠. 저는 처음엔 이 캐릭터가 그냥 '착하고 멍청한 남주'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반전이 있습니다. 이헌이 황태를 포기한 이유가 바로 수련 때문이었다는 것.
여기서 반전(plot twist)이란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토리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헌은 그때 당시 모두를 위해 자신이 물러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도피가 가장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저는 앞부분을 다시 읽고 싶어 졌습니다. 작가가 복선을 깔아 둔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의 로맨스에서 만족스러웠던 건, 남주가 주인공의 행복을 진심으로 지지한다는 점입니다. 수련은 회귀 후 여러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 이헌은 그 선택을 막기보다 함께 감당하려고 합니다. 독자로서 '이 남자라면 주인공이 행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로판에서 이런 확신을 주는 남주를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아시죠?
현재 '로열 스캔들'은 2025년 164화로 완결되었고, 2026년에는 깜짝 외전이 잠깐 연재된 후 완료된 상태입니다. 작가가 본편과 외전을 통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대한제국 배경이 만드는 정치적 판타지
'로열 스캔들'은 21세기 입헌군주제를 배경으로 합니다.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란 왕이 존재하지만 실제 정치는 헌법과 의회가 담당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실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실제 통치는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작품 속 대한제국도 이런 체제인데, 황제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진 못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만약 대한제국이 남아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작품은 그런 판타지를 소설 속에서 구현했습니다. 왕권이 남아 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혈통만 가지고 인간성 쓰레기가 왕이 되는 경우'죠. 작품 속 황제가 딱 그런 인물이죠.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통치자로서도 최악입니다. 황태후인 시어머니 역시 권력 유지를 위해 며느리와 손녀를 희생시키는 인물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복수극에 그치지 않는 건, 수련이 이런 부조리한 체제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인데요. 저는 중간에 수련이 내각 구성이나 황실 개혁안 같은 정치적 이슈의 계기를 만드는 것에 개입하는 부분이 나올 때 '좀 어렵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통쾌하게 풀어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와 이헌(대안이 될 수 있는 황족)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고, 그들 없이는 시작도 해결도 힘들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본인이 직접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강단 있게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여성 캐릭터가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 선다는 점입니다. 왕권 국가에서 여성, 특히 황후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보조적입니다. 그런데 수련은 황제를 폐위시키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해냅니다. 물론 제도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를 보는 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작품은 로맨스와 복수, 정치적 판타지를 균형 있게 다룹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세 가지 요소가 서로를 받쳐주면서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듭니다. 제가 단숨에 완주를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균형감 덕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련은 딸을 살리는 데 성공하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며, 새로운 사랑도 찾습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고생만 하다 끝나는 이야기보다, 이렇게 명확한 보상을 받는 결말을 선호합니다. 수련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 행복은 당연하다고 느껴지거든요. 회귀물을 좋아하신다면, 특히 엄마 캐릭터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단순한 복수가 아닌, 지키기 위한 싸움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 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