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했을 때, 제 태교는 클래식이 아니라 웹소설이었습니다. 명동이며 성수며 만두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들을 찾아다녔죠. 그 이유가 '마왕'을 읽어서 였는데요. 오죽하면 신랑이 "너가 비설인 줄 아냐?" 할 정도였죠. 여주인공 비설이 소설 속에서 어찌나 만두를 좋아하고 맛있게 먹던지 소설을 읽다말고 밤중에 왕십리 만두, 개성집 같은 곳에 가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무협의 탈을 쓴 로맨스 오히려 좋아
보통 무협이라고 하면 싸움을 하거나 내공을 쌓거나 그런 이야기 중심이라 좀 딱딱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이 소설은 결이 좀 달라요. 굳이 따지자면 무협의 탈을 쓴 로맨스에 가깝달까요?
전통 무협을 좋아하는 신랑은 '이게 무슨 무협이야~'하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로판도 좋아하는 제 입맛에는 딱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복수라는 묵직한 줄거리 위에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이 잘 붙어서 마음이 쫄깃하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는 맛이 있거든요. 정파와 마교의 인물이라는 설정이 무협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상황임에도 서로 돕고 성장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아 태교중에도 좋은 마음으로 읽었답니다.,
무협지 히로인의 편견을 깨는 '비설'의 매
이 소설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남주인 혁련휘보다 히로인 비설의 캐릭터가 더 심층있게 다뤄졌기 때문이었어요. 비설은 정파 조직인 북천회의 비밀 병기로 길러진 실력자인데, 그 살벌한 역할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아름답고 성격도 좋고 만두 하나에 무너지는 다층적인 면을 가진 인물이거든요.
초반에 남장을 하고 혁련휘를 "형형"하고 부르면서 정체를 숨길 때는 좀 오글거리는 느낌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런 클리셰조차 작가님이 비설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치로 잘 녹여낸 부분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비설이 무심하게 적을 베어넘기다가도 만두 한 접시에 눈을 반짝이는 장면을 보면 저도 모르게 육즙가득 따끈한 만두 생각에 침이 고이기도 했고요. 얼굴도 예쁘고 가진 무력도높은 정파의 고수가 만두 하나에 무너지는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지나고보니 이게 비설 입덕 부정기였던 것 같더라고요. 결국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생각됩니다.
무협 입문자에게 이만한 소설이 있을까?
솔직히 무협 용어가 나오면 처음엔 머리가 아파요. 사전 지식이 없으면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잖아요. 저도 이 작품 읽을 때는 그랬어요. 정파니 사파니 하는 설정도 낯설고.. 그래도 이 작품은 그런 용어를 잘 몰라도 술술 읽힐 만큼 스토리에 좀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시크하고 능력있는데 내 여자한테만 절절한 혁련휘 같은 남주 캐릭터는 당시에도 대세였지만 지금봐도 설레는 인물인 것 같아요. 우수에 찬 눈빛으로 복수를 꿈꾸는 모습이 전형적인 듯 하면서도 자꾸 돌아보게 된답니다. 조연들도 단순히 배경으로 소모되지 않고 개성도 뚜렷하고 나름의 서사를 다 가지고 있어서 지루할 틈도 없어요.
저는 지금은 연재중인 작품은 잘 안 건드려요. 기다리는거 너무 힘들거든요. '마왕'은 이미 네이버시리즈와 카카오페이지에서 완결까지 다 보실 수 있으니 읽는 속도가 빠르신 분들도 걱정없이 몰입해서 쫘~악 보기 좋으실 거에요.
막 엄청난 철학이 담겨있거나 화끈한 복수 액션 이런건 없지만 전반적으로 잘 어우러진 맛있는 만두 한 접시 같은 소설입니다. 비 오는 날 만두 한 판이랑같이 가볍게 정주행하신다면 더할 나위없이 만족하실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