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시간을 돌리고 싶은 건 '비트코인' 때문만이 아니었다 - 웹소설 <시간치료사 세레스> 후기

by 반짝이 다아트 2026. 4. 23.

나이가 들면 거울을 볼 때 '옛날엔 그래도 예뻤는데...'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자연스럽게 몇 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좋을 것 같은데 싶죠. 시간을 돌려서 거창하게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과거로 돌아가 비트코인을 사거나 주식을 쓸어 담겠다는 야망까진 아니지만 그저 출산 전의 탄력 있던 피부, 혹은 깊어지는 주름이 생기기 전으로 딱 몇 년만 되돌리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절실한 마음이 생기는 건데요. 평생 '주름은 때가 되면 지는 것'이라며 체념하듯 살던 40대 후반의 제가, 최근 피부과에서 보톡스의 신세계를 맛본 뒤 읽게 된 소설이 바로 <시간치료사 세레스>입니다.

 

300년 전의 성녀, 지독한 '현생'에 불시착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과거 시간을 돌려 사람들을 치료하던 성녀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불치병은 고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죠. 눈을 떠보니 300년 뒤,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여성 '세레스'의 몸에 빙의해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빙의물은 주인공이 당황하기 마련인데, 세레스(그레이스)는 참 올곧고 강인한 캐릭터 답게 T력 만랩으로 상황을 해결해가기 시작합니다. 300년 전의 능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간 현실을 하나씩 깨는 모습이 정말 통쾌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300년 동안 그녀를 잊지 못하고 기다려온 '순애보 대공' 카이넬이 있습니다. 다시 만나는게 맞을까 고민도 되고 하지만 카이넬이 너무 신경쓰이고 보고싶은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갔어요. 

 

배려라는 이름의 '방치'가 만든 잔인한 현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님께 약간 화가 날 정도로 깊이 공감했던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주변 인물들이 세레스를 불행에 빠뜨린 방식이에요. 악역들뿐만 아니라 소위 '선한' 사람들조차도 세레스에게 '너를 위한 배려'라며 정작 필요한 건 묻지도 않고 방치하거나 외면하죠. 그들은 배려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세레스를 무기력하게 방치하여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끔 만듭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게 너를 위한 최선이야'라며 행해지는 그 아량 섞인 배려들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너무나 진짜 있을법한 일이라 굉장히 답답해요. 그 답답한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낸 세레스의 불행을 보며, 저도 모르게 제 삶 속에서 겪었던 비슷한 감정들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레이스의 영혼이 세레스의 몸을 빌려 이 상황들을 당당하게 응징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배가 되더라고요.

 

피부과 보톡스와 세레스의 '시간 응징'


가장 통쾌한 복수의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외모에 집착하는 악역에게 시간을 가속해 머리카락을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생 피부과 근처에도 안 가던 제가 최근 비립종 제거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보톡스만 맞아도 인상이 달라진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생전 처음 시술을 받았거든요. 주변에서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저도 엄청 만족하고 있어서 세월을 정통으로 맞는다는게 얼마나 기가막히고 분통터지고 억울한 일일지 공감했답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잠시 뒤로 돌리거나 천천히 흐르게 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는 복수랄까요? 외모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에게 '노화'를 선물(?)하는 것만큼 지속적이고 뼈아픈 복수는 없을 겁니다. 제 개인의 일상과 소설 속 판타지가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딱 맞물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작가님의 필력이 증명하는 웰메이드 로판


사실 이 소설은 <점괘보는 공녀님>으로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사이딘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초반의 가벼운 빙의물 느낌과 달리, 뒤로 갈수록 신의 안배와 거대한 세계관이 드러나며 스토리의 규모가 커집니다. 주인공이 단순히 개인의 복수를 넘어 세상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어요. 기다리는 고통이 싫어서 연재물은 잘 안 보는데, 이건 주간 조회수 10위 안에 꾸준히 드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소장권을 아낌없이 지르게 만드는 필력입니다.


후회하고 뒤를 돌아보기보다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믿고 살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세레스처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는 강인한 여주인공을 좋아하신다면, 혹은 저처럼 '시간의 흐름'에 묘한 향수를 느끼는 분들이라면 <시간치료사 세레스>를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고구마 뒤에 오는 사이다가 정말 확실한 작품입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