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FOMO)가 그저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내 삶에 콕 박히니,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다. 5월 상승장에서 시작된 그 조바심이, 불과 몇 달 뒤 나를 이렇게까지 통째로 흔들어놓을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두 개의 불안 사이에서
5월, 시장이 뜨겁던 그때 나는 지독한 포모에 시달렸다. 여기저기서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나만 이 흐름에서 빠져 있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올라타지 않으면 영영 뒤처질 것 같은 조바심. 결국 나는 그 마음에 떠밀리듯 시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정반대의 불안을 앓고 있다. 못 사서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는 사놓은 것이 녹아내리는 걸 지켜보는 불안으로 고스란히 자리를 바꿨다. 계좌를 열어보면 어떤 종목은 -53%까지 빠져 있고, 전체로는 -290만원의 손실이 찍혀 있다. 아직 손실을 확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문제는, 이 숫자가 도무지 숫자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문득 이 돈이 아이들 학원비 몇 달 치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 하는 충동이 목까지 차올랐다. 투자 원금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살림이 걸린 돈처럼 느껴지는 순간, 냉정함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오르는 걸 놓쳐서 미칠 것 같던 마음과, 산 게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마음. 그 두 개의 불안 사이에서 나는 몇 달째 시달리고 있었다.
원칙은 있었지만, 여론에 휘둘리고 말았다
이 책은 우리가 남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시선에 얼마나 쉽게 휘둘리는지를 파고든다. 여론이야말로 때로는 가장 나쁜 의견일 수 있다는 것. 다수가 향하는 곳이 반드시 옳은 방향은 아닌데도, 우리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며 안심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나는 정확히 그 여론에 동조해서 함께 휩쓸린 사람이었다.
냉정하게 짚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산 회사들은 망하지 않았다. 기업의 이익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가는 빠졌다. 실적이나 기업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시장 전체에 퍼진 공포 분위기가 주가를 끌어내린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나름의 손절 기준이 분명히 있었다. 장대음봉으로 5% 이상 빠지거나, 시장 대비 10% 이상 밀리면 손절한다는 원칙이었다. 숫자로 정해둔, 감정을 배제하기 위한 나름의 방어선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자, 나는 내가 세운 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머리로는 팔아야 한다고 알면서도, 여론이 만들어낸 공포와 미련 앞에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원칙이 무너진 며칠
가장 뼈아팠던 건 6월의 경험이다. 그때 나는 모처럼 원칙대로 손절을 했다. 그런데 하필 바로 그다음 날, 갭상승이 나왔다. 원칙을 지켰더니 손실만 확정하고 반등의 기회는 고스란히 놓쳐버린 꼴이 된 것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이 내 판단 전체를 헝클어놓았다. 원칙을 지켜서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억울함이, 그 뒤로 나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다음부터 나는 주가가 빠져도 "금방 오르겠지" 하며 어영부영 넘기게 됐다. 한 번 데인 경험을 핑계 삼아, 원칙을 못 지키는 나 자신에게 슬그머니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런데 그 어영부영이 더 큰 화를 불렀다. 결국 나는 손실 200만원을 확정했고, 하필 또 그 직후에 5% 갭상승이 터졌다. 주가는 그대로 전고점까지 곧장 치솟았다. 나는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다시 사지 못했다. 원칙을 지켰을 때도, 지키지 않았을 때도 결과가 나빴던 그 며칠 동안,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채로 시장 앞에 서 있었다. 무엇이 맞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시 원칙 앞에서
계좌가 반토막이 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숨을 고르고 내 불안의 정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책이 불안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처럼, 나도 내 불안이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마주하려 애썼다.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이번 하락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조정이었다. 다만 그 폭이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컸을 뿐이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자, 눈앞의 손실 숫자에 매몰되는 대신 시장이 향하는 방향성을 보게 됐다. 당장 계좌가 얼마 마이너스인지가 아니라, 이 큰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고, 다음을 생각할 최소한의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깊이 통감했다. 6월에 원칙을 지켰다가 다음 날 갭상승을 맞은 그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내 원칙 자체가 틀렸다고 낙인찍어버렸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잘못이었다. 단 한 번의 결과로 원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버린 그 성급함이야말로, 정작 내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칙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그 원칙이 맞는지 틀린지, 아직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한 번의 실패는 원칙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저 한 번의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최소한 몇 번의 사이클은 이 원칙을 그대로 지켜보며 데이터를 쌓아볼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야 이 원칙을 유지할지, 손볼지를 판단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처럼 여론과 공포에 휩쓸려 내가 세운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만큼은,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불안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불안에 끌려다니지 않는 법은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